1: 애쉬, 3024년
그들이 건네준 스크립트 파일을 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진 은 2735년에 세워진 국가입니다. 혼란스럽고 오염된 지구의 극히 일부만을 살려서 3019년인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한 강대국을 세웠습니다......"
"진에서는 최고의 교육환경을 자랑합니다. 진의 아이들은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견딜 수 있는, 미래에 언제나 대비되어 있는 인재로 성장해 나갑니다. 비록 아직은 아이들이지만 곧 자라서 진을 더욱 강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 것입니다. 저희의 교육 시스템은 몇 가지의 이론을 기반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스크립트를 계속 읽어 나갔다. 조금만 더 참으면 오늘은 끝난다. 그들이 나에게 주는 벌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물론 내일 다시 시작되지만 말이다.
이 너무나도 철저하고 명확한 이론들은 진 설립 당시 유명 학자였던 럼록 박사님이 제안하셨습니다. 진의 설립에 매우 큰 역할을 하셨지요. 박사님께서는 132세까지 진을 위해 헌신하셨으며, 아쉽게도 이듬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스크립트의 마지막 문단을 읽는 나의 목소리는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게 된 걸까. 더 이상 여기 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방송부원들을 제치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몇 년 동안 참고 해온 일이라서 더 이상 나를 감시하는 카메라와 로봇들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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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그날처럼, 난 달렸다. 미친 듯이 달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에 서 있었다. 절벽의 끝자락에 가서 서자, 파도끼리 부딪히면서 생성된 차갑고 얼음 같은 물방울들이 내 얼굴을 때렸다. 날 채찍으로 후려치는 듯했다.
“어떤 시련이 와도 견딜 수 있는 아이들을…...”
스크립트의 내용을 떠올리자 눈물이 비 오듯 흘렸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엄마에게, 마야에게, 나를 도운 모든 이들에게. 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나는 살릴 수 있었지만, 나는 살리지 못했다. 아니, 살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비겁한 겁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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