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오늘은 feel 받아서 좀 길게 써봤습니다. 재미있게 보시고 언제든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4: 애쉬, 마야네 집
"잠깐 앉아있어. 내가 핫초코 해줄게."
마야는 부엌 가상화면 속에서 기본 핫초코 레시피를 변형한 다음, 곧바로 실행시켰다. 로봇 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날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야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내가 지금 혼란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마야는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야는 본래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을뿐더러, 표현을 하더라도, 화났다, 안 화났다로 표현을 하곤 했다. 화가 안 났다는 건 좋은 의미였다. 적어도, 우리가 멀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 마셔."
어느새 다 만들어진 핫초코가 내 눈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하얀 김이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약간 멈칫하자 마야는 "나 화 안 났는데도......"라고......" 하면서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도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핫초코를 한 입 마셨다. 진하면서도 커피처럼 약간 썼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그 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시피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위로 스윽, 올라갔다. 핫초코를 한 입 더 마셨다.
"가출한 거야?"
마야가 정적을 깼다.
나는 머그잔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맛있는 핫초코를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뭐, 사실상 로봇이 만들었지만.
마야가 다시 물어왔다.
"뭐 때문에?"
"잔소리."
마야의 눈이 커졌다.
"너도 잔소리 들어?"
풋! 하고 웃음이 나오면서 긴장이 정말히 풀렸다.
마야는 삐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가 그렇게 웃긴데?"
"당연히 잔소리 듣지, 그럼 안 듣냐?"
"아니, 너네 엄마 완전 착하시잖아. 들어봤자 얼마나 듣겠어."
"웃기시네. 남 앞에서만 그렇게 하는 거야. 나한테는 얼마나 잔소리하고 소리지르시는데. 착한 건 너희 엄마고. 맨날 너한테 맛있는 거 사주시고, 원하는 옷도 다 사주시잖아."
이번엔 마야가 웃었다.
"저기요,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희 엄마는 맨날 그런 것 만 사주지, 절~때 저한테 칭찬 같은 건 안 하시거든요?"
언제 멀어졌냐는 듯이 우리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정도로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현관문에서 ‘주인님,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마야의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마야, 공부 안 하고 뭐해. 너 수학숙제는 다 했어--"
이 말을 하시면서 마야의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캐리어는 못 본 듯했다..
"어어, 애쉬니?"
나는 들고 있던 머그잔을 놓고 꾸벅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 방해되신다면 지금 갈게요."
"아니야 아니야. 오랜만에 왔는데 좀 더 놀다가."
"아, 네……. 실례하겠습니다."
"아냐 아냐, 놀다가!"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마야의 엄마는 마야에게 '너 나중에 보자. 죽을 줄 알아.'라는.' 눈빛을 보냈다. 순간적으로 나는 데자뷔를 느꼈다.
"마야,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눈빛. 두 눈을 꼭 감아도 계속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2살 때,살때, 케이크가 망가졌을 때 잔소리한 엄마의 금색 눈빛과 똑같았다. 그냥 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았다. 마야 엄마의 눈 색깔은 검은색이고 우리 엄마는 옅은 갈색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 큼에는 마야 엄마와 내 엄마의 눈빛이 같았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둘의 눈은 금색으로 변했었다.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정신 차려 애쉬! 그저 네가 상상한 것뿐이야!’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거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친하지도 않으면서 초대는 왜 한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놀지만 말고 제발 공부 좀 해라 공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마야가 이번만 봐달라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 내가 이유 없이 찾아온 건데, 마야는 그런 날 보호해주고 있었다.
"변명하지 마!.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몇 년만 더 있으면 너희는 친했던 안 친했던 경쟁자가 될 거야. 괜히 상처 받지 말고 지금 당장 인연을 끊으란 말이야. 어차피 애쉬는 널 오래전에 버렸어. 휴, 지금부터 1시간 줄게. 어떻게든 해결해."
이 말 안에는 ‘해결하지 않으면 너는 큰 일어날 거야.’라는.’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다시 마야의 방으로 들어갔다. 핫초코는 반도 못 마신 채로 식어버려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마야와 아직 친할 때, 엄마가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마야 엄마가 한 말과 거의 겹쳤다. 어차피 애쉬는 널 오래전에 버렸어 대신 넌 이미 마야를 버렸어라고 한 것 빼고는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말이다. 금색 눈빛, 같은 말. 순간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지만 곧바로 난 그 생각을 버렸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마야가 들어왔다.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저기 애쉬, 내가 할 말이 좀 있어. 우리 있잖아……”
갑자기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야,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나 다시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진짜로 미안해."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집으로 뛰어갔다. 캐리어를 두고 왔다는 건 집에 도착해서야 겨우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캐리어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소설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다이어리의 내용 (5) | 2020.11.08 |
---|---|
5: 애쉬, 엄마의 다이어리 (2) | 2020.11.05 |
3. 애쉬, 가출 (5) | 2020.10.09 |
2. 애쉬, 20년 전으로. (12) | 2020.09.25 |
소설 업데이트 - 1. 애쉬, 3024년 (1) | 2020.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