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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

9. 애쉬, 옷장 속에서

새로운 글을 가자기고 돌아왔습니다!

마야 이야기로 잠깐 쉬었다가 애쉬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해야 될지 한참 고민했네요 ㅎㅎ

집에서 엄마의 일기를 찾고 썸남이랑 채팅하다가 홍채인식 소리에 놀라 옷장 안에 숨어버린 애쉬.

과연 어떻게 될까요?

 

9. 애쉬, 옷장 속에서 

 

 애쉬?  

엄마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한 번 외출하면 저녁때 정도는 돼야 들어오기 때문에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 옷장의 맨 뒤쪽에 바짝 붙었다. 아까 들어올 때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여러 옷들 사이에서 숨을 죽였다. 

 

 애쉬? 으휴, 내가 저 년을 못 말려 진짜. 하여튼 간 맨날 지 맘대로야 지 맘대로.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부엌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애쉬!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나와! 

 응? 그걸 어떻게 알았지? 

 

빨래대가 바닥에 덜그럭거리면서 나뒹구는 소리가 들리자, 속으로 아차 싶었다. 

엄마의 다이어리를 찾다가 널어놓은 손수건을 엄마가 본 것이다! 

애쉬 이 바보 멍청이! 속으로 나 자신을 마구 욕했다.  

 

 애쉬! 애쉬! 

 엄마가 온 집안을 쿵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옷장 속에 더 깊이 들어가서 두 눈을 꼭 감았다. C.S Lewis의 마녀와 사자와 옷장이 생각났다.

책에서처럼 나니아로 가버리고 싶었다. 왜 이럴 때만 천몇 백 년백년 전 고전이 생각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 군데군데 둘러보더니 곧 나갔다.

안심하고 숨을 다시 쉬려는 순간, 쾅! 소리를 내면서 옷장 문이 열렸다. 수많은 옷들 속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옷들 사이로 화가 난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숨을 참았다. 엄마는 옷들을 몇 벌 꺼내다가 더 이상 숨을 못 참겠다 싶을 무렵 옷장 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나갔다. 경직되었던 몸이 풀리면서 난 패닉 상태로 빠져들었다.  

 

 어떡하지? 엄마가 나가지 않고 계속 집에 있으면 어떡하지?

밥은 그냥 굶고 옷장에서 자야 하나?’ 아, 밥이 문제가 아닌데!'

 

 일단 만일을 대비해서 옷장 안을 편안하게 만드는데 신경을 썼다.

사람이 3명 정도는 여유 있게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어서 자는 데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옷들이 이불과 배게 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빛이었다. 옷장 안은 정말 어두컴컴했다. 

 

‘혹시……?’

젤다, 온. 허공에 대고 속삭이자, 옷장이 에어스크린의 희미한 불빛으로 가득 찼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너무 뿌듯하게 느껴졌다.

 

 젤다, 헤일리에게 페이스 콘택트 좀 해줘. 

소리를 최소로 줄이고 에어스크린에게 명령을 내렸다. 

헤일리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지갑을 자기 마음대로 쥐였다 폈다 할 수 있는 애였다.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은데 티켓이 없다면, 아이들은 헤일리에게 찾아가서 티켓을 구입했다.

물론 원래 티켓의 두배 가격으로 말이다.

한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애와 우연하게 만나 말을 걸어보고 싶다면, 그 우연한 만남은 헤일리가 만들어 주었다.

당연히 돈을 받고 말이다.

헤일리는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사람이었고,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돈을 얼마나 요구할지는 몰랐지만, 일단 여기서 탈출하는 게 더 중요했다. 

 

 네, 알겠습니다. 애쉬 님.”” 

 곧바로 헤일리의 얼굴이 옷장 벽에 나타났다. 내가 앉아있는 곳을 보자 헤일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쉬? 도대체 거긴 어디야? 설마... 옷장 안이야??!??!! 

 나는 최대한 불쌍하고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헤일리를 설득시키려면 굉장한 연기를 선보여야만 했다. 

 

 맞아, 나 지금 옷장 안이야. 헤일리, 나 좀 도와줘, 부탁이야.

오늘 실수로 엄마가 가장 아끼는 세라믹 접시를 깨고 말았는데, 그걸 방금 엄마가 알아버렸어.

그래서 지금 옷장 안에 숨고 있는데, 나 좀 제발 꺼내 줘.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나의 연기가 더 실감 나게끔 하려고 눈물까지 쥐어짰다. 모델링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얻은 꿀팁이다.

헤일리는 고민하는 듯했다.  

 

 제발, 제발, 제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헤일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SS 미드나이트 블루. 

 

 뭐? 

 

 네가 저번 달에 미카엘라의 댄스파티 때 입었던 그 드레스 말이야! 그걸 나에게 선물로 준다고 약속하면 꺼내줄게.”

 

 아... 그거... 알았어.”” 

나는 웃음을 꾹 참고 소중한 애완견이 죽었을 때 지을만한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 SS 미드나이트 블룬지 뭔지가 나에게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실 그 드레스는 파티 하루 전, 인터넷으로 클라우라 중고 매장에서 5비트를 주고 산 것이다.

다른 애들은 50에서 70 비트씩 주고 직접 매장을 방문해서 3시간씩 고르는 동안에, 나는 정말 단시간에 적은 돈을, 게다가 집에서 편리하게 쇼핑을 마쳤다. 그런데 헤일리는 지금 그 5비트짜리 원피스를 탐내고 있었다.

5비트 치고는 꽤 예쁜 드레스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약속을 받아내자, 헤일리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꼭이야! 내가 신호를 주면 창문으로 빠져나와! 

 

 띠리 리리, 띠리 리리.

“통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벌써?’ 라고 생각을 하는 동안, 엄마는 이미 전화를 받고 있었다. 

 

연결해……. 네,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엄마는 가다듬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어, 혹시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애쉬와 같은 학년인 아이가 유감스럽게도 자살을 하게 되었는데, 애쉬에게 빌렸다가 미처 돌려주지 못한 물건들이 있더군요.

지금 전해드리고 싶은데, 너무 바쁘진 않으신지요? 

 

 아니요 아니요. 지금 괜찮아요.

 애쉬가 지금 집에 없어서 제가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어디로 갈까요? 학교로 지금 찾아갈까요?  

 

 헤일리가 순간 당황한 듯했다. 

“... 네?” 

 

지금 학교로 찾아가냐고요. 

 

아,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방금 드론이 문 앞에 놓았을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나자, 엄마는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재빨리 옷장에서 나와 헤일리가 원하던 그 드레스를 챙겼다.  

 

 어어? 왜 없지? 아직 안 왔나?  

엄마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에 나는 이미 방을 탈출하고 창문을 잠그고 있었다.

일단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갈 곳이 필요했다. 다시 마야의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럼 어디로 가지...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나는 내 개인 볼타루스인 '모델 176 핫 스파클링 루지'에 올라탔다.

드레스는 내일 학교에서 줘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한숨을 쉬면서 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렸다.  

젤다, 나를 종이 도서관 101호점으로 데려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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