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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글짓기

그냥 좀 웃긴 이야기

출처: 구글 이미지

예전에 알던 동생/후배(?) 이/가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옷 색을 신분별로 나누는 사회가 있으면 어떨까? 사실 이런 사회는 이미 예전에 존재했던 걸로 알고 있다. 신라의 어느 무슨 제도였더라... 역사 시간에 배웠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중요한 건 옷색을 신분별로 구분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애의 상상 속과는 좀 많이 다른 체제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상상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의 실마리가 떠올랐다. 

 

 

  난 이 놈의 등급제가 정말 싫다. 이 놈의 등급제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맨날 풀색 옷만 입어야 한다. 난 극적인 웜톤이라서 하~나도 안 어울리는데. 머리끈, 머리핀, 신발, 선글라스, 심지어 화장품도 모두 풀, 풀 풀색이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그린'이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학교에 민트색 아이라이너와 올리브색 립스틱을 하고 간다는 말인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이 둘러싸인 삶을 살았지만, 가끔씩은 이런 인생이 정말 짜증 난다. 오늘도 온통 다양한 톤의 초록색으로 가득 찬 내 방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거실로 향했다. 식탁에는 초록색 접시 위에 놓인 초록색 계란과 초록색 토스트가 있었다. 하필이면 '그레이드 그린'으로 태어나서 내 입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모든 것은 다 이렇게 밥맛 없는 색이다. 초록색 잼을 초록색 나이프에 찍어서 토스트 위에 바르기 시작하였다. 이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양의 잼을 바르고 말았다! 오늘따라 정말 되는 일이 없다. 초록색 치약이 발린 초록색 칫솔로 이를 닦고 학교로 출발했다. 14, 13, 12, 11... 뜨악!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 멈추어버렸다. 나는 10층에 누가 살고 있는데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문이 열립니다.' 부드러운 음성 녹음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놈' 이 들어왔다. 오늘도 '그놈'의 머리는 빨간색 젤로 떡칠이 되어있다. 나를 깔보는 거 기분 나쁜 눈동자. 볼 때마다 한 대 쳐주고 싶다. 물론 그랬다가 나는... 으,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놈'의 이름은 찰스이고, '그레이드 레드'이다. 공부는 나보다 한참 못하면서 언제나 나에게 으스댄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야, 식물! 오늘도 화장했냐? 안 그래도 풀 같이 생긴 게 얼굴까지 초록색으로 칠하니까 풀인지, 인간인지 못 알아보겠다! ㅋㅋㅋ"

 

  '참자, 참자, 참자.'

 

 "야, 왜 대답을 안 하냐? 아참, 식물은 말을 못 하지? 미안, 내 실수."

 

딩동~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열렸다. 내 주먹이 '그놈'의 머리를 박살내기 전에 나는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휴, 진짜 내 주먹이라도 한 방만 먹이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릴 텐데. 나 보고는 식물이라고 비꼬지만 정작 자신은 식물 취급도 못 받을 정도로 비실비실, 말랐다.

 

'불쌍해서 안 건드린다.' 속으로 주문은 외우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저기, 아가씨! 잠시만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꺄아악!"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나를 부른 그자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모두 섞인, 무지개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나는 다시 한번 전력질주를 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돌아다니지? 저건 무슨 그레이 드지? 사람이 아닌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물론, 내 방금 본 광경도 말이 안 되지만 말이다.